공방 노트

사포 방번호 순서와 건너뛰면 안 되는 이유

사포 방번호 순서와 건너뛰면 안 되는 이유

사포질은 흠집을 더 고운 흠집으로 바꾸는 일

사포질을 매끈하게 만드는 마법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는 깊은 흠집을 한 단계씩 더 얕은 흠집으로 바꿔 가는 작업이다. 마지막에 흠집이 너무 얕아 눈에 안 보일 뿐이다. 그래서 끌 자국을 사포로 메우려는 욕심은 금물이고, 그건 사포가 아니라 끌로 더 깨끗이 깎아야 할 몫이다. 애초에 잘 든 끌로 면을 정리해 두면 사포질이 절반으로 주는데, 그 끌 다루기는 처음 챙기는 끌 네 자루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방번호 읽는 법

숫자가 작을수록 거칠고 클수록 곱다. 80번이나 120번은 끌 자국과 큰 흠을 잡는 초벌, 180번과 220번은 면을 정리하는 중벌, 320번 이상은 도장 직전의 마무리다. 호두나무 그릇이라면 보통 120번에서 시작해 400번 언저리에서 끝내고, 더 곱게 광을 내고 싶으면 600번까지 올린다. 단풍처럼 단단한 나무는 같은 번호라도 천천히, 충분히 문질러야 자국이 고르게 정리된다.

한 단계도 건너뛰지 않는다

120번에서 답답하다고 320번으로 점프하면, 고운 사포가 거친 흠집을 지우지 못한 채 표면만 반들거리게 만든다. 도장을 올리는 순간 그 자국이 더 또렷이 드러난다. 한 번에 두 단계씩 건너뛰지 말고 80, 120, 180, 220 식으로 차곡차곡 올라가는 편이 결국 더 빠르다.

woodturning sanding technique

단계가 끝났는지 확인하는 법

각 단계에서 앞 번호의 흠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같은 자리를 충분히 문지른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 끝났는지 모르겠으면 면을 비스듬히 빛에 비춰 본다. 가는 줄이 한 방향으로만 보이면 그 단계는 끝난 것이다. 번호를 바꿀 때마다 표면 가루를 한 번씩 털어내야, 앞 사포의 거친 입자 한 알이 고운 사포 위에서 긴 줄을 그어 버리는 일을 막는다.

사포 종류와 선반 위에서의 요령

방번호만큼이나 어떤 사포를 어떻게 대느냐도 결과를 바꾼다. 사포를 고르는 기준과 회전하는 선반 위에서 안전하게 대는 요령을 함께 본다.

재질과 손·기계 고르기

같은 220번이라도 사포 종류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가장 흔한 산화알루미늄 사포는 값이 싸고 두루 쓰기 좋아 처음엔 이걸로 번호만 갖춰 두면 충분하고, 더 단단한 작업이나 오래 쓰려면 세라믹 사포가, 젖은 상태로 갈 땐 내수 사포가 낫다. 사포는 입자가 닳으면 갈리는 게 아니라 표면만 문질러 열을 내니, 색이 번들거리고 잘 안 갈리면 아끼지 말고 바로 새 조각으로 바꾼다. 곡면이 많은 그릇은 기계보다 손사포가 더 정확한데, 평평한 판재라면 오비탈 샌더가 빠르지만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면을 파먹으니 늘 움직이며 갈아야 한다.

선반 위에서 댈 때

회전하는 작업에 사포를 댈 때는 받침대를 먼저 치운다. 받침대와 사포 사이에 손가락이 끼는 사고가 의외로 흔하기 때문이다. 사포는 손가락 끝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로 받쳐 잡고,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마찰열로 면이 타니 가볍게 옮겨 가며 문지른다. 이런 기본 안전 습관은 작업장 안전 수칙에 함께 정리해 두었다. 마지막 단계 직전에 면에 물을 살짝 발라 결을 한 번 일으킨 뒤 마르면 고운 사포로 다시 정리하면, 나중에 물이 닿아도 면이 덜 일어나니 물이 자주 닿는 그릇이라면 빼먹지 않는 게 좋다.

분진과 흔한 실수

사포질은 공방 작업 중 미세 분진이 가장 많이 나오는 단계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의 목분진 자료도 샌딩과 절삭을 가장 큰 발생원으로 꼽으니, 마스크를 쓰고 끝나면 바로 환기하고 표면을 닦아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특히 좁은 실내 공방이라면 집진기 호스를 작업 지점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들이마시는 양이 크게 준다. 초보가 자주 하는 실수도 함께 짚어 두면, 한 번호로 너무 오래 버티는 것과 마지막 번호에서 광이 난다고 멈추지 못하는 것, 가루를 안 털고 다음 번호로 넘어가는 것 셋이다. 흠이 안 지워지면 사포 탓이 아니라 끌 자국이 너무 깊다는 뜻이니 선반으로 돌아가 면을 다시 깎는 편이 빠르다. 사포질은 화려한 작업은 아니지만, 같은 그릇이라도 이 단계에서 손이 멈춘 자리와 끝까지 간 자리는 마감 뒤에 확연히 갈린다.

수종마다 손의 세기와 머무는 시간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도 사포질의 숨은 절반이다. 무른 나무는 자칫 한자리만 파여 면이 울 수 있으니 더 가볍게 옮겨 가며 갈고, 단단한 나무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흠을 고르게 지운다. 결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박박 문지르면 고운 사포에서도 잔 흠이 남으니 마지막 두어 단계는 되도록 결을 따라 마무리하고, 선반을 멈춘 상태에서 결 방향으로 한 번 더 손사포를 먹이면 회전하며 생긴 동심원 모양의 미세한 줄까지 지워진다. 이렇게 손에 익은 사포질은 시간을 잡아먹는 지겨운 단계가 아니라, 끌이 만든 면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짧고 분명한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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